나의 이야기

지강이는 대가리 든 거 없이 살아서...

하지강 2013. 9. 23. 22:59

환갑 때 로댕 미술관에서 (이 때만 해도...)
    내 머리카락이 흰지가 이제 몇 년이 안 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검어서 친구들이 별종이라 놀리기도 했지만 집안 내력인 같다. 내 선친이 오십에 날 낳으셨고 나는 막내를 십년 당겨 사십에 보았다. 서도의 길을 가면서 세상을 늦게 아니 거꾸로 살다 보니 딴 친구들 보다 덜 늙어 보이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오래 전 우리 승훈이가 고등학교 때 산교육 차원에 아버지 친구들의 면면도 익힐 겸 동기회 전체 합동 산행 때 마곡사에 데리고 갔었다. 늦게 본 이 녀석 돌잔치에 동기 친구만 좁은 집에 사십 명이나 와서 손자 봤다면서 하고 놀려 대었지만 너무나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 ※ ※ ※ ※ ※ ※ ※ ※ ※ 그 동안 많이 큰 애를 대견해 하면서 한 친구가 덕담으로 우리 애에게 “친구지만 네 아버지 존경한다.” 하니 나는 오히려 부끄러웠고 쑥쓰러웠지만 우리 아들 녀석은 그냥 멀뚱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업하는 친구가 지갑에서 십 만원 수표 한 장을 용돈으로 주었습니다. 우리 아들 녀석 횡재한 날 이었습니다. 등산 후 마곡사에서 모두 식사 할 때 였습니다. 자주 못 보는 서울 친구들이 새카만 내 머리털을 보고는 “지강이 대가리는 와 저리 새카만노?” 그 때 안단태(旦苔) 가 “지강이가 대가리 든 거 없이 살아가 안 그렀나.” 모두들 파안대소 하면서 공감하는 듯 했습니다. 아! 근간에 덕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었습니다. 한 때는 문일지십 [聞一知十]이라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아는 게 자랑이었지만 어느 날 부터 바보스러움이 좋아 대가리 든 거 없이 살려고 노력 했거든요. 그 날 이후 흰 머리카락 없는 머리털 보고 시비 들을 때 마다 나는 대가리 든 거 없이 살아서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말 했습니다. 이제는 희긋희긋 제법 하얀 서리가 내리니 그 말 할 기회가 없어 졌으나 생각 할수록 마음에 드는 덕담 이었습니다. “지강이는 대가리 든 거 없이 살아서...” ※ ※ ※ ※ ※ ※ ※ ※ ※ ※ ※ ※ 우리 아들 녀석 그날 집에 와서는 지 애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져 보였지만 덕담 해준 친구와 격려 해 준 친구들의 안부와 관심은 없고... “아빠! 수표 준 아저씨 뭐 하시는 분인데?”
마곡사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