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하나 새끼 표내지 마라...”

하지강 2013. 10. 13. 14:12
    1983년에 어머니께서 내가 그 당시 하고 있던 메라민 그릇 공장에 담보가 좀 더 필요 해 어머님께 구원을 요청 했더니 사업을 하셨던 선친의 삶이 힘들어 보여서 인지 “네가 붓을 잡고 글 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구나” 하시는 권유의 말씀에 따라 하던 사업을 접고 종로 가톨릭근로자회관에 있는 조그만 지하방에서 안분 서도회를 열었습니다. 그 곳에서 10년간 서도에 정진하다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상가에서 와서 서예학원을 교육청에 정식 등록을 하고 4년을 지내면서 학생들이 많이 와서 수입은 조금 있었지만 내 공부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등록을 취소하고 지금 까지 있는 계산 성당 안에 계산 문화관에 들어 왔습니다. 이곳에 온지 벌써 20년이 되어 가니 세월의 빠름이 화살 같습니다. 시내 중심가이지만 성당 안이고 해서 서도회 식구는 별로 없어도 대구에서 유일하게 하루 세 번 성당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종소리 울릴 때 마다 삼종 기도와 ‘메아 큘바 메아 큘바 메아 막시마 큘바’를 읊조리면서 서도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싸리나무에 담긴 숯을 사시면 나는 편치를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싸리 꼬챙이를 다듬으시어 사진틀 뒤에다 두고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마다 내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로 쓰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 새끼 표내지 마라...” 라는 엄중한 나무람과 함께 내리 치시는 매는 매섭기가 대단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친구들은 나를 알기를 나의 선친이 오십에 본 외아들이라 금지옥엽으로 컸는 줄 알고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매로 컸습니다. 먼 훗날 삼십이 넘어 서도에 정진 할 때 지금은 서예가로서 큰 어른 대접 받고 있는 녀석이 하도 행실이 더럽고 마땅찮아 알고 보니 누나 여럿에 외아들로 커서 그렇다 했습니다. 나는 그 날 술을 한 잔 먹고 들어 와서 울면서 어머니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야가 와 이카노... 뭔 일 있었나?” “어무이 하나 새끼 표 내지 말라며 때리신 뜻 오늘에서야 알았심더... 고맙심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릴 때 그 매와 그 말씀이 없었더라면 나 스스로 생각 해 봐도 주위 사람들에게 나 역시 욕 얻어 먹을 짓 예사로 하면서 살아 왔을 것 같았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매가 두려웠고 부모님이 두려웠지만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내가 부모가 되고 스승이 되니... 세상 살아가면서 어른이 계시고 두려운 데가 있다는 것이 내 삶을 겸손 되게 하고 의지가 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승 예수, 장자를 사형으로 모시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어제가 어머니 기일(忌日) 이어서 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