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팔담
志岡 선생님께 주뼛주뼛 서화반에 고개를 내밀고 선생님의 글을 어깨너머로 처다 보기 시작한 것이 구십오년 칠월. 이제 선생님과의 인연도 어느덧 삼년이 다 되어갑니다. 중고등학생이었다면 벌써 졸업반인 셈이고, 우리네 풍속에 三(삼)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인만큼 이쯤해서 저도 지난 한 시기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정리해야 할 모양입니다. 지난 삼년 구성궁예천명으로 부터 시작해서 석고문, 을영비, 용문조상기를 거쳐 이제 난정서에 이르기까지 선생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시는 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 왔습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벗어난 것이겠지만 그래도 선의 본질과 서의 예법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보는 눈이 생긴 것은 제게 너무도 크고 소중한 수확입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커다란 진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몸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신 선생님께서 계시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지난 수십년 서예인생의 눈물과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선생님의 그 귀한 가르침이 없었던들 저는 지난 삼년동안 배운 것을 아마 삼십년이 지나도 깨닫지 못했을 성 싶습니다. 보나마나 서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제멋에 겨워 전혀 엉뚱한 邪(사)術(술)이나 쫓고 있었을 테지요. 일주일마다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찾아주시는 그 발걸음이 게으른 제게 얼마나 따끔한 채찍이 되는지... 옹졸한 그릇에 큰 가르침을 담기엔 애당초 벅찬 일이고 아직 배울 것들이 첩첩이 쌓여있지만 다행이 선생님께서 제 손을 붙들어 주시고 계시기에 그리 두려움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먹과 붓으로 비록 하나의 업은 이루지 못할망정 그것을 필생의 벗으로 삼게 된 것에 무한한 기쁨과 긍지를 느낍니다. 참 좋은 벗을 사귀게 해 주신 나의 스승 지강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황인욱 올림 ※ ※ ※ ※ ※ ※ ※ ※ ※ ※ ※ ※ ※ ※ ※ ※ ※ ※ ※ ※ 위의 글 古(고)邨(촌) 황인욱은 나를 스승으로 불러 주는 아끼는 제자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 스스로 누구의 스승이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가 나의 제자란 말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스승이란 위치가 함부로 말 할 수 없고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를 나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고촌을 95년도에 감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 즉시 그의 재기를 알아보았습니다. 덥석 먹이를 물지 않는 고양이 같은 지식인의 모습과 선비의 자세를 그에게서 보고서 스스로 판단이 서기 까지 기다리니 우리 고촌이 나의 가르침에 너무나 열심히 따라 주었습니다. 내가 만난 후학 중에 아주 빠른 진척도와 모든 부분에서 훌륭한 재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황인욱은 영어(囹圄)의 몸이었을 때 서울대 서양사학과 스승 이인호 교수를 포함 215명의 서울대 전현직 교수와 동문들이 석방 탄원서를 올릴 정도로 아끼는 사람들이 많은 영민한 친구입니다. 나의 집안이나 처가가 모두 실향민이라 선친으로부터 수 없이 들었던 금강산 이야기에 금강산 팔담 맑은 물에 먹을 갈아 작업하면 좋은 작품 절로 되겠다고 강의중에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촌은 잊지 않고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면서 팔담의 청정수를 여러 병 담아 택배로 나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먹 갈물을 남김없이 아들놈이 다 마셔 버려 고촌의 정성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성정과 재주를 가졌기에 덕담에 인색한 나지만 우리 고촌 황인욱은 두고두고 아끼고 싶은 나의 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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