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규야! 그 땅 똥 된지 오래야... 미안하다...”
하지강
2014. 8. 3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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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향이 강원도 고성인 금오 공대 교수
디모데오가 여름휴가 가는데 같이 가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나도 운전 할 날이 많이 안 남았어... 더 늙으면
못 가니 설악산으로 낙산사 경포대로 쭉 한 바퀴 돌고 와요“
평소 운전을 즐기지 않는 나는 장거리 여행을
지인들과 함께 가면 묻어갈까 잘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래 전에 둘러 봤던 곳이라
한 번 가야지 하였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에 맺힌 게
있어선지 그 쪽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 하였습니다.
어렸을 적에 나의 선친과 강원도 인근을 여행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실향민이시고 젊었을 때에 속세를 떠나 단발 하시고
금강산에 들어가시어 삼년간 절간 생활 하신 적이
있으시어 산에만 가시면
“이게 산이야? 금강산이 산이지...” 하시었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설악산을 좋아 하시어 낙산사 옆에
큰 땅을 마련하시고 노후에 들어가시어 사실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어릴 때이었지만 절벽에 송림 사이로 해풍을 몰고 오면서
떠오르는 해는 정말로 장관이었고 옆에 서 계시는 선친의
모습이 존경스럽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사업을 하셨지만 항상 자연을 좋아 하시어 강으로 나가서는
견짓대 낚시와 천렵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명산대찰에는
가족 위해 아낌없이 공양 하시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임을 일러 주신 분입니다.
나는 그 이후 성장 하면서 틈만 나면 선친께 그 땅에
멋진 별장에 잘 가꾸어진 정원을 상상 하면서 여러 가지
구상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땅만은 팔지 마시기를 부탁드리곤 했습니다.
내가 이룩한 재물이 아니라 별다른 욕심은 없었지만
그 땅만은 물려받고 싶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선친께서 당신이 연세가 일흔 둘이 되면 돌아 가신다고
꿈에서인지 엉터리 점쟁이 때문인지 자주 예지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사업을 그만 두시고 한 참 동안 돌아가시기 전에
“이상하다 내가 일흔 둘에 죽어야 되는데 안 죽네... 그 참”
하시면서 여든 하나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재물을 신나게 쓰신다면서
말년을 사시었기 때문입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구상 하면서 먼 훗날
자연을 벗 삼아 낙산사 땅에서의 내 모습을 그려 보곤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하루는 선친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부탁드린 낙산사 땅은 아직 가지고 계시지요?”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난 후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하시는 말씀
“규야! 그 땅 똥 된지 오래야... 미안하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아버님 방을 나와 버렸습니다.
“아! 그 것 마저...”
큰 숨 한 번 쉬고 잊어버리기로 했습니다만 정말로 섭섭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땅에는 큰 호텔이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2005년에 낙산사가 소실되고 내 어릴 적 기억에 낙산사 인지
의상대인지 선친과 내 이름이 현판에 새겨져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걱정도 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맺힌 게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 잊자 내 것이 아니 된 거
현판도 타 버리고 아쉬움도 저 불길 속에 태워 버리자...
자연과 더불어 꿈 꾸어 온 그 땅에 대한 미련이 많았었나 봅니다.
그런저런 사연을 낙산사로 가는 도중에 일행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으니 낙산사 옆에 그런 땅이 있는가 하고
의구심도 들었고 워낙 오래 전 추억이라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너무나 바뀐 풍광에 낙산사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왼쪽편에 낙산비취호텔이 보였습니다.
선친의 말씀대로 호텔이 들어 서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갖은 구상을 하면서 추억을 가지고 있던 곳이어서
낙산사와 의상대를 둘러보니 새로이 중축을 하고 단청을 해
옛 추억처럼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절벽 위 송림 사이로 불어오는 해풍은
변함없이 가슴을 트이게 하여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형님 호텔 사장 나오라 해... 지금이라도 물러 물러... 하하...”
이 모든 게 인생인데 물러서 될 일인가...
잘 왔다는 생각에 마음껏 해풍을 들이키면서
동해 바다 파도 너울에 선친에 대한 원망도 띄워 보냈습니다.
3초 만에 생긴 일로 3일을 괴로워하고
3분 만에 생긴 일로 3년을 괴로워하고
3일 만에 생긴 일로 30년 괴로워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삶은 살지 말아야겠습니다.